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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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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문서는 〈전기가오리 논문모음집: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담긴 편집자의 글이다.
  •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무료로 공개한다.

차례

1

미감학과 예술철학에서 다루어지는 물음은 다종다양합니다. 예술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일에서 예술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야 하는지, 우리가 예술을 통해 지식을 형성할 수 있는지, 예술이라는 넓은 영역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분류해야 적절한지 등 여럿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예술 일반에 제기되는 물음입니다. 이에 더해, 음악, 회화, 문학, 건축, 조각, 무용, 연극, 시, 사진, 영화 등 개별 예술에 제기되는 물음도 있습니다. 페미니즘, 윤리학, 심리학, 문화연구 등 예술 바깥의 연구와의 관련에서 제기되는 물음 역시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물음에 대한 답변이 성공적으로 주어지려면, 일단 ‘예술’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일군의 활동이 명료하게 파악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흔히들 ‘예술’이라고 하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활동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등장한 아방가르드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거스릅니다. 다다이즘, 퍼포먼스, 추상 표현주의, 개념미술 같은 시도는 종전의 예술 실천과 많은 측면에서 다릅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논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례를 두 가지 들겠습니다. 예술철학자를 혼란하게 하는 아방가르드의 첫 번째 사례는 마르셸 뒤샹의 〈샘〉입니다. 〈샘〉은 철물점에서 구매한 남성용 소변기를 기성품readymade 그대로 전시한 ‘작품’입니다. 〈샘〉은 철물점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같은 모델의 소변기와 겉모습에서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자는 예술작품이고, 후자는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아방가르드의 다른 사례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입니다. ‘브릴로’는 마트에서 파는 흔한 세제의 이름입니다. 한국 정황에 맞추어 말하자면 ‘퐁퐁’, ‘다우니’ 같은 것이지요. 브릴로 세제는 ‘Brillo’라는 제품명이 크게 인쇄된 종이 박스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워홀은 나무 합판을 활용하여 그 종이 박스와 같은 크기의 박스를 만든 뒤 그 위에 실크 스크린 인쇄를 하였는데, 이렇게 제작된 ‘작품’은 마트에 있는 진짜 물건인 브릴로 박스와 시각적으로 전혀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전자는 예술작품이고, 후자는 예술작품이 아닙니다.

〈샘〉과 〈브릴로 박스〉 같은 사례는 무엇이 예술작품인지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흔들고,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이처럼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을 식별하는identify 원칙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하는 과제 앞에서 일군의 철학자는 ‘예술계가 그렇게 판단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작품이다’라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예술계가 누구로 구성되어 있고, 어떠한 이론을 도입하고, 어떠한 기준을 활용하는지 등에 따라 어떤 것은 예술이 되거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차주의적 접근이며, 절차주의의 시작점에 해당하는 논문이 이 책의 1장, 아서 C. 단토의 「예술계」와 2장, 조지 디키의 「신제도론」입니다. 절차주의는 언뜻 보기에 예술작품이 아닌 아방가르드 작품을 예술작품으로 포섭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만든 인공물에 있는 기능을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예컨대 세탁기는 그것이 빨래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세탁기입니다. 자동차는 그것이 이동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자동차입니다. 인공물은 그것이 수행하는 고유의 기능을 통해 정의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예술이 인공물인 한, 예술에도 특정한 기능이 있겠습니다. 그러한 기능을 언급하지 않고서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지를 결정하는 일은—설령 그것이 예술계 전반의 결정이라고 하더라도—임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인공물로서의 예술이 갖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면 예술을 어렵지 않게 정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능주의적 접근이며, 기능주의의 핵심 논문이 이 책의 3장에 해당하는 먼로 C. 비어즐리의 「예술에 대한 미감적 정의」입니다. 그러나 기능주의는 대단히 명료한 정의를 내놓는 대신, 미감적 관심의 충족 같은 기능과는 무관한 아방가르드 작품을 예술작품으로 간주하지 않는 귀결을 가져옵니다.

절차주의와 기능주의에 대한 논의는 6장에서 이어집니다. 6장, 「예술: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를 쓴 캐서린 아벨은 절차주의와 기능주의를 묶는 한 방도를 제안합니다. 아벨이 보기에 〈샘〉은 예술작품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예술작품이기도 합니다. 우선, 〈샘〉은 예술작품입니다. 우리 시대의 예술계가 그렇게 판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아벨은 절차주의에 정당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샘〉은—〈샘〉 자체는 전통적인 예술작품처럼 미감적 관심을 충족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지만—우리 시대의 예술계로 하여금 그것이 수행해야 하는 기능을 더 잘 수행하게 합니다. 아벨은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를 예술작품에 제한하지 않고 예술계로 확장하며, 그런 다음 〈샘〉이 예술계의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해명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벨은 절차주의와 기능주의를 한데 묶는 방식을 내놓는데요, 이러한 결합은 아방가르드는 물론이고 전통적 예술 역시 그것이 왜 예술인지를 성공적으로 설명합니다. 더 나아가, 훌륭한 예술작품과 형편없는 예술작품을 구별하는 기준 역시 내놓습니다.

5장에 해당하는 논문은 도미닉 맥아이버 로페스의 「예술이론은 필요 없다」입니다. 대단히 파격적인 제목입니다. 그런데 방점이 ‘필요 없다’에 찍혀서는 안 됩니다. ‘예술이론’, 특히 ‘예술’에 방점이 찍혀야 맞습니다. 로페스는 예술철학의 논의가 예술 일반art in general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기에 이론상의 진전이 더뎠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일반이 아니라 회화, 조각, 무용, 영화 같은 개별 예술arts을 대상으로 논의를 전개하면 이론상의 진전이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제안입니다. 다시 말해, ‘〈샘〉은 예술인가?’는 좋은 물음이 아닙니다. ‘〈샘〉은 조각인가?’가 더 나은 물음이며, 좋은 답변은 여기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별 예술에 초점을 맞출 때 아방가르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로페스의 주장입니다.

4장, 데니스 더튼의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리의 예술 개념이 없다”」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서구의 미술이론가나 미술사가는 어떤 의미에서 딜레마에 처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내 어떤 부족이 만든 독특한 조각상을 두고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그것은 예술이다’라고 말하기도 곤란합니다. 전자처럼 말하면 예술 개념의 활용을 서구의 실천에 제한하는 대신 특정 부족의 실천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튼은 몇몇 인류학자들이 부족 문화의 성취를 찬탄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우리의 예술 개념이 없다”라고 말하는 이러한 관행을 비판하면서 단호히 후자를 택합니다. 글이 없는 소규모 문화의 성취에 대해서도 ‘예술’이라는 개념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2

본격적인 독서에 앞서 하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론에 대한 접근은 가능한 한 무전제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완전히 소거할 수 없는 특정한 성향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성향과 배경이 이론 공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샘〉이나 〈브릴로 박스〉 같은 아방가르드 작품이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당연시와 함께 독서를 시작한다는 것은 특정한 논변에는 이미 찬성하고, 특정한 논변에는 이미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서의 결과가 믿는 것을 더 강하게 믿는 일이 되어버린다면, 여기 실린 글들은 논문이 아니라 경전으로 기능하는 셈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어떤 것들이 예술에 속하는지를 원점에서 찾고자 하는 물음이지, 예술에 속하는 것을 이미 결정하고 나서 그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억지로 찾는 물음이 아닙니다.

전기가오리의 두 번째 논문모음집이 만들어지는 데 많은 분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번역을 맡아주신 강은교, 김은정, 김혜연, 박준호, 박채연, 이승택 씨, 〈서양 철학의 논문들〉 시리즈에 이어 이번 시리즈의 디자인도 맡아주신 유윤석 실장님, 전기가오리의 인쇄와 제책을 담당하시는 인타임의 협업에 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후원자 여러분의 꾸준한 지원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로 편집자의 글을 마칩니다.

참고문헌

내용 없음

판권

발행일 2023년 12월 31일

지은이 신우승

펴낸곳 전기가오리
검토 김은정 박준호 이승택
편집 신우승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